일제 강점기 온 국민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준 우리의 영원한 영웅 손기정 옹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출생-사망:1912~2002.11.15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고 16세 때 중국 단둥의 회사에 취직하여 신의주~압록강 철교~단둥에 이르는 20여 리 길을 매일 달려서 출퇴근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32년 신의주 대표로 제2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2위를 차지하였고 1937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일본 메이저대학을 졸업했다. 2002년 11월 15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대한체육회에 의하여 2011년 스포츠영웅으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과 함께 선정되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운집한 12만 명의 관중들은 숨죽이며 곧이어 스타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74~412, 재위 391∼412)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갖추어준 바탕에서 대정복 전쟁을 수행하였고 국경 북쪽으로는 연 나라, 남쪽으로는 백제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고구려의 힘을 과시하며 자신의 영토를 넓혔다. 그리고 숙신과 동부여마저 광개토대왕의 위력 앞에 떨게 하였다. 광개토대왕이 이룬 최강 고구려는 아들 장수왕에 이르러 절정을 치닫는다. 그 같은 고구려의 화려한 면면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으로 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여실히 전해진다. 39년의 짧은 생애 동안 광개토대왕이 이룩한 이 공적은 서양의 정복왕 알렉산더와도 비견되는 우리 민족의 영광이고 자랑이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
가난해서 시집도 여러 번 가고 자식까지 둔 여인이 왕에게 발탁되어 궁궐에 들어갔는데 바로 장녹수(張綠水,?~1506)이다. ‘연산군’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여인 장녹수는 흥청(興淸)이라는 기생 출신에서 일약 후궁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였다고나 할까? ㅎㅎ 30세의 나이에도 16살 꽃 다운 여인으로 보였다는 동안(童顔) 장녹수는 자식을 둔 후에도 춤과 노래를 배워 기생의 길로 나섰고(현대시대로 보자면 여자 아이돌??), 궁중으로 들어와서는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후궁이 되었다.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음탕한 삶과 비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는데 그녀는 많은 금은보화와 전택(田宅) 등을 하사 받았고, 연산군의 총애를 발판 삼아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지난 포스팅은 홍국영의 어린 시절과 정조의 최측근 즉 오른 날개로 불리기 까지의 과정을 적었고 이번 글은 그의 집권기 활동과 몰락과 죽음에 관하여 포스팅을 해 보겠습니다 홍국영의 은퇴와 유배 홍국영은 1776년 3월 정조가 즉위하고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승정원 동부승지(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7월에는 승정원 최고직인 도승지(지금의 대통령비서실장 격)로 승진된다. 이후 홍국영은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거의 줄곧 도승지직을 맡았다(원빈 사후 약 2개월 동안 물러난 적이 있었음) "지신사"는 이 당시의 도승지의 별칭인데 이는 곧 홍국영을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문관으로는 춘추관 수찬관, 경연 참찬관 예문관 직제학, 규장각 직제학, 홍문관 제학, 대사헌, 이조참..
오늘은 조선의 역사 인물 중 정조대의 세도 정치가 홍국영에 관하여 포스팅을 해 보겠습니다. 홍국영의 생애중 초반 홍국영(1748년~1781년 4월 28일)은 조선 영조, 정조대의 세도 정치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덕로(德老)이다 세손궁의 궁료시절 때부터 정조의 총애를 얻었고, 정조 즉위 후 부홍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실제 축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간에는 흔히 권력을 잡은 후 세도를 부리다가 축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홍낙춘이고 어머니는 우봉이 씨로 이유(李維)의 딸이며 당시 아버지 홍낙춘은 관직이 없었다. 훗날 딸이 원빈으로 간택되면서 가감역, 호조참의 등을 역임하게 된다. 홍낙춘은 서울 풍산 홍 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상의 8대손이며 선조의 적녀 정명공..
오늘은 조선의 역사 중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던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에 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막강한 권력 철종(1831년 7월 25일~1864년 1월 16일,조선 25대 왕)은 1858년 유일한 적장자 이용준이 태어났지만 6개월 만에 사망하였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아들들 또한 영아기에 사망하였고 자녀 중 유일하게 혼례를 치른 영혜 옹주 또한 14세에 사망하여 후손이 단절되어 철종의 뒤를 이어 흥선군의 어린 둘째 아들이 순조(조선 23대 왕)의 양자가 왕위에 올라 고종(대한제국의 초대 왕)이 되었다. 흥선군은 고종의 아버지로서 대원군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흥선대원군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로 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래서 정권을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