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6년(성종 7) 11월 7일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의 맏아들(적장자)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후궁이었다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왕비에 오른 윤 씨이다. 당시 연산군의 어머니 윤 씨는 성종(成宗)의 첫 번째 후궁이었으며 이후 연산군을 잉태하면서 비(妃)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이융(李)이고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서연(書筵)을 통해 세자로서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학문적인 소양은 선대 왕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조선의 제1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조선 제10대 국왕 연산군(燕山君, 1476. 11. 7~1506. 11. 6, 재위 1495~1506)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군주일 것이다. 그 명성은 물론 오명이다. 12년에 걸친 길지 않은 ..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문인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 48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천재 화가로서, 그리고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사임당은 현모양처(賢母良妻)를 상징하는 인물로 5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신사임당만큼 존경받은 여성도 드물다. 그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성 최초로 고액권인 5만 원 화폐 도안 인물로까지 이어졌다. 선덕여왕, 유관순 열사 등 몇몇 후보 인물들이 있었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해 마지않는 신사임당이 최종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녀의 삶은 50년이 채 안 되지만 그녀에 대한 한국인들의..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매우 총명한 왕으로 ‘빼어나게 용맹스러웠으며 담대한 결단력이 있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해동증자’라(효를 강조했던 중국의 사상가 증자에 빗대어 부른 말) 불리며 성군 소리를 들었고, 멸망하기 불과 5년 전만 해도 신라를 공격해 30여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적극적인 정복사업을 벌이던 의자왕(?~660, 재위 641~660)이 13만 대군 나, 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는 무기력하게 700여 년의 백제가 멸망하였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대로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등한시하고 간신들에게 놀아났던 것인가???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용감하고 담력이 뛰어나 일찍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서동요’로 널리 알려진 서동과 선화공주의 유명한 로맨스를 기록한 [..
일제 강점기 온 국민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준 우리의 영원한 영웅 손기정 옹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출생-사망:1912~2002.11.15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고 16세 때 중국 단둥의 회사에 취직하여 신의주~압록강 철교~단둥에 이르는 20여 리 길을 매일 달려서 출퇴근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32년 신의주 대표로 제2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2위를 차지하였고 1937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일본 메이저대학을 졸업했다. 2002년 11월 15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대한체육회에 의하여 2011년 스포츠영웅으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과 함께 선정되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운집한 12만 명의 관중들은 숨죽이며 곧이어 스타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74~412, 재위 391∼412)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갖추어준 바탕에서 대정복 전쟁을 수행하였고 국경 북쪽으로는 연 나라, 남쪽으로는 백제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고구려의 힘을 과시하며 자신의 영토를 넓혔다. 그리고 숙신과 동부여마저 광개토대왕의 위력 앞에 떨게 하였다. 광개토대왕이 이룬 최강 고구려는 아들 장수왕에 이르러 절정을 치닫는다. 그 같은 고구려의 화려한 면면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으로 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여실히 전해진다. 39년의 짧은 생애 동안 광개토대왕이 이룩한 이 공적은 서양의 정복왕 알렉산더와도 비견되는 우리 민족의 영광이고 자랑이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
가난해서 시집도 여러 번 가고 자식까지 둔 여인이 왕에게 발탁되어 궁궐에 들어갔는데 바로 장녹수(張綠水,?~1506)이다. ‘연산군’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여인 장녹수는 흥청(興淸)이라는 기생 출신에서 일약 후궁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였다고나 할까? ㅎㅎ 30세의 나이에도 16살 꽃 다운 여인으로 보였다는 동안(童顔) 장녹수는 자식을 둔 후에도 춤과 노래를 배워 기생의 길로 나섰고(현대시대로 보자면 여자 아이돌??), 궁중으로 들어와서는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후궁이 되었다.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음탕한 삶과 비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는데 그녀는 많은 금은보화와 전택(田宅) 등을 하사 받았고, 연산군의 총애를 발판 삼아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